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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포로 장무환 님과 전설의 대사관녀

     

    1998년 9월 30일 북한에 국군포로로 강제 억류 되었다가 탈북한 장무환님 고국을 떠난지 45년 이후에 사망신고도 했던 그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였죠

    죽었던 사람이 살아 돌아온 장무환은 포로소에서 포로생활을 하였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전사자 처리를 하여서 동작동에 있는 국립묘지에 안치가 되어있었다는 것

    1998년 귀환하여 2015년 9월 19일에 사망한 장무환 할아버지

    국군포로 장무환

    53년4월 22연대에 입대, 하사로 근무

    한국전쟁이 막바지이던 7월 금화지구 전투에 참가, 국군 포로로 잡혀 북한으로 끌려감

    함북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 노역

    1998년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

    1998년 9월 30일 대한민국 귀환

    사망 2015년 9월 19일(나이 89세)

    악명 높은 아오지 탄광에서 강제 노역으로 죽도록 일을 하다가 가까스로 탈북에 성공하여 대한민국의 땅을 밝은 것은 45년의 시간이 걸릴 줄 누가 알았을까요?

     

    북한에서 재혼한 아내가 사망하자 탈북을 결심하고 중국으로 오게 됩니다.

    중국을 건너오고 나서도 바로 대한민국의 땅을 밟지 못한 그~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었지만 대사관녀도 한몫을 했죠

    만약 그때 대사관에서 조금 귀를 열고 통화를 했더라면,,,,,? 그의 생환도 조금 더 빨라지지 않았을 까요?

    다음은 1998년 10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국군포로 장무환씨의 북한포로기 편에 담겻던 통화내용

    전설의 대사관녀

    그것이 알고싶다 국군포로 장무환-50일간의 북한 탈출기(98.10.11)

    대사관: 말씀하세요.

    장무환: 난,국군 포로 장무환인데...

    대사관: 네,그런데요.

    장무환: 장무환인데..거기서 좀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대사관: 여보세요,무슨 일로 전화 하셨죠?

    장무환: 한국 대사관 아닙니까?

    대사관: 맞는데요.

    장무환: 다른게 아니라..내가 중국에 지금 와 있는데 좀 도와 줄 수 없는가,이래서 묻습니다.

    대사관: (한숨을 내 쉬며) 없죠.

    장무환:북한 사람인데 ...내가...

    대사관:아,없어요.(전화를 끊음)

    장무환:국군포론데....

    1998년 탈북한 국군포로 장무환님의 도움요청을 거절해 많은 네티즌들의 분노를 샀던 대사관녀 사건도 화제가 되었는데 지금 와서도 생각을 해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대사관녀의 입장에서는 장난 전화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을 수도 있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관의 직원이라면 조금 더 깊이 주의 깊게 행동을 해야 되지 않았을까,,, 싶

    입장에선 장난전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서비스 품질은 매우 낮은 상황)

    중국에 숨어살던 장무환님이 고국 땅을 밟기까지 정부의 노력은?

    대사관에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고, 결국 방송사의 도움으로 45년 만에 귀환할 수 있었다는 대목에는 국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볼 대목 아닌가 싶습니다.

     

    돌아가신 장무환님이 남긴 말 중에 하나를 남기며 포스팅을 마쳐 보려 합니다

     

    대한민국 장교로서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장교로서 제 소임을 다하지도 못하고 적군에게 생포되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이 부끄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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